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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는 과연 개인의 자신의 이해와 가치관 형성의 최소한의 길을 밝힌다는 목표를 인문학 강의를 통해서 대체 가르칠 수 있는 것일까? 인문학수업을 단순히 지식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라면 불가능하다. 전공적 지식으로 과부하가 걸린 학생에게 암기만을 요구하는 인문학수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 우선, 인문학수업은 조금 더 학생에 한 발짝 다가가 이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려 줄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전공에 찌들어있는 학생들은 아무래도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메말라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업들이 학생의 감정의 영역을 조금도 침범하려 하지 않고, 단순히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단순히 그들이 감정을 컨트롤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가슴에 직접 다가와 메말라 있는 그들의 감성을 보듬고 위안하고 어느 길로 인도해주길 원하고 바라고 있다. 일례로 종교의 의미를 분석하고 특징들 외우는 수업인 서울대학교의 '종교 상징의 세계' 강좌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교양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공계학생들이 문과계통의 학생들 보다 더 많이 들어 놀란 적이 있었다. 분명 이들이 기피할 만한 지식전달식의 강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강의내용에서 직접적으로 학생들이 겪는 좌절과 고통을 종교적인 시각을 통해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처럼 몇 안 되는 인문학적 수업일 지라도 학생의 감정에 대해 공감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강의의 형태를 띄어야 한다.
# 처음 사회에 나와 삶에 직면하는 초보자들에게 지식은 단지 지식일 뿐, 각자의 삶 속에서 비추어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가 2011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심해지는 양극화로 인해 정의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이의 이유로 바라볼 수 있지만, 그의 강의를 보면서 인문학 수업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강의에 매료되어 책을 구입한 이도 상당수 임에 분명하다. 그가 던지는 까다로운 질문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과 같은 질문을 고민하도록 하는 강의는 단순히 "칸트의 사상" 에 대해 논의하라 라고 하는 수업보다 훨씬 개인에게 현실로서 다가 온다. 단순히 지식전달을 넘어서, 학생 스스로 삶을 지식에 비추어 보고, 어려운 고난이 닥쳤을 때 앞서 고민한 인문학적 시각으로 어려움을 바라 볼 수 있게 한다.
# 학생들에게 이제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하는 현장수업을 제공해야 한다. 학생을 강의실 밖으로 나오게 하여 소년소녀가장의 학습을 도와주는, 병든 환자들에게 봉사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내면적인 공허함을 떨쳐버리고 삶에 의미를 찾도록 해야 한다. 대학생의 자살은 현대인에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현상인 내면적인 공허함과 연관된다. 부모님 세대처럼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온종일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 현대 학생은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특히 눈코 뜰새 없는 학기를 보낸 학생은 모든 시험이 끝난 여가시간에 내면적인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심리학자인 빅터플랭클에 따르면 나이든 노인이 느끼는 이러한 내면적인 공허감이야말로 현대인이 자살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한다. 많은 위인들이 그랬듯 학생들 또한 지적 성취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학생들이 삶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현장수업과 같은 체험 형태의 강의가 필요하다.